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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춤추는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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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ione Squadra Cat Campionato
Pres. Reti
1993/94 Platense A 3 -
1994/95 Platense A 2 -
1995/96 Monaco A 4 -
1996/97 Monaco A 5 -
1997/98 Monaco A 27 18
1998/99 Monaco A 27 12
1999/00 Monaco A 30 22
2000/01 Juventus A 25 14
2001/02 Juventus A 34 24
2002/03 Juventus A 17 9
2003/04 Juventus A 25 16
2004/05 Juventus A 18 9
'원샷원킬'은 이 선수를 위한 말이다. 다비드 트레제게는 어렸을적부터 아버지와 형과 함께 축구를 보러 여행을 할정도로 축구에 관심이 많았던 소년이었다.
축구를 보러갈때마다 그의 아버지와 형은 그에게 말했다. '다른 건 볼 필요없다. 포워드의 움직임만 봐라.' 그때부터 다비드는 포워드의 움직임을 상세히 관찰했고,그 효과가 그가 선수로 데뷔했을때부터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는 그렇게 축구를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선수가 되어서도 포워드 자리를 차지한다.
다비드는 큰 키와 제공권에 있어서 다른 유소년 선수들과 차이를 보였고,그 때문에 빠르게 성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93년 아르헨티나의 군소팀인 플라텐세에 데뷔한다. 첫 시즌이었던 93/94 시즌 그는 팀의 주전공격수와 교체출장으로 첫 공식경기데뷔를 했으나 그것도 얼마가지 못한다. 그가 굼띄다는 것이었다. 아직까지 그는 포워드 치곤 너무 미비하게 움직인다는 혹평을 받아야했고 그 결과 3경기 출장에 무득점이라는 성적을 낸다. 사실 그는 어릴적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건너왔기때문에 16세의 나이에 프랑스에서의 적응이란 힘들기만 했다. 하지만 그는 축구만큼은 자신있는 것이라 생각했고,축구하나라면 프랑스에서도 성공할수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노력 때문이었을까 군소팀에서 두시즌간 단 한골도 올리지 못하고있던 그를 프랑스의 명문 AS MONACO에서 데려간것이었다. 다비드의 뛰어난 신체조건과 숨겨져있는 골감각,스트라이커로써의 그 어떤 무언가를 발견한 모나코의 스카우터는 그를 데려가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모나코로의 이적은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이기도하다. 그는 매시즌마다 점점 발전해나갔고 그 결과 모나코에서의 세번째 시즌에 여태껏 보여주지 못한 능력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기록을 봐도 알수있듯이 그는 출전한 경기수에 전부 다다를 정도로 골을 성공시켰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는것을 다음 시즌에도 보여준다. 전 시즌보다는 약간 떨어진 득점력이었으나 누가봐도 21살의 그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잠재력을 가진 공격수임에 틀림없었다. 모나코에서의 마지막 시즌은 그를 프랑스 대표팀의 차세대 스트라이커로써 만들어줌과 동시에 이탈리아의 명문 유벤투스로의 이적에도 힘을 실어주었다. 득점 2위였다.
레블뵈 군단에는 그와 동갑내기출신인 티에리 앙리가 존재했다. 다비드는 대표팀에 뽑혀 유로2000 대회에 참가하게 됬지만 본선무대부터 결선진출까지 교체로만 나올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가 대표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는것을 중요한 경기서 입증했다. 프랑스는 지단,앙리,피레등을 앞세워 유로2000 결승에 진출했고,연장까지 가는 접전끝에 2-1의 짜릿한 승리를 거두었다. 결승역전골의 주인공은 앙리도 지단도 동점골의 윌토르도 아닌 교체선수였던 트레제게의 몫이였다. 그는 단 한번의 찬스를 괴물같은 결정력으로 골을 성공시켰고 이탈리아를 침몰시켰다. 처녀출전이었던 98년 자국월드컵서도 중요한 순간에 골을 넣었던 그의 결정력이 또 한번 터진것이었다.
결국, 그는 23세의 어린 나이로 명문 유벤투스로의 이적에 성공했다.
그가 유벤투스로 왔을땐 이미 필리포 인자기라는 걸출한 스트라이커가 존재했고,그것은 그가 넘어야할 첫번째 과제였다. 하지만 그는 역시나 비안코네리의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안첼로티 감독은 그에게 교체출장으로 많은 기회를 주었고 그 기회를 놓치지않고 차분히 득점을 쌓아나갔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그는 14골이라는 적지않은 득점을 올리며 자신의 입지를 넓혔다. 01/02 시즌은 유벤투스에게 있어서 변화의 시즌이었다. 그의 경쟁상대였던 인자기는 밀란으로 이적했고,그에게 새로운 감독인 마르첼로 리피가 왔다. 리피는 익히 그의 재능을 눈여겨봤고 01/02 시즌 그에게 선발 출장이라는 기회를 준다. '기회의 사나이','원샷원킬'의 그는 그런 감독의 믿음에 부응했고 스트라이커들의 무덤인 세리에A에서 득점왕을 차지한다.
또한 24골이 모두 필드골이라는 점에 있어서 그 누구도 그를 더이상 신출내기 선수라 말하지 못했다.
변화의 중심엔 그가 서있었다. 그는 다시 돌아온 리피감독의 지휘아래 자신의 세리에A데뷔 두번째 시즌만에 스쿠뎃토를 들어올린 것이다. 그렇게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고 출전한 2002년 한일 월드컵은 그에게 첫번째 시련을 가져다준다. 앙리와 함께 레블뵈의 투톱을 이뤄 출전했지만 본선 3경기 무득점이라는 스트라이커로써 비난을 받을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픈 마음을 딛고 새롭게 시작한 2002/2003 시즌은 그에게 슬럼프를 가져다준다. 부상으로 출장횟수도 적었을 뿐만아니라 팀의 간판 스트라이커로써 10골도 채 올리지 못했던 것이었다. 더군다나 02/03 시즌 유벤투스는 리그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성과의 주축이 될수없었고,팬들로 부터 비난아닌 비난을 사게됬다. 그렇게 그는 새로운 시즌을 준비했고 03/04 시즌이 다가왔다. 그는 다시 두자리수 경기출전과 두자리수 득점을 세우며 자신이 아직 건재함을 알렸다. 하지만 이번엔 팀이 문제였다. 작년과는 대조될 정도로 성적이 하락된 팀은 무관에 그쳤고 그의 시즌 득점역시 빛이 바랬다.
2004/2005 시즌이 오고 유벤투스는 파비오 카펠로 감독을 영입. 자신의 유벤투스에서 세번째 감독을 맞이한다. 새로운 감독인 카펠로 감독은 시즌중 부상에 시달렸던 그에게 무한한 지지를 해주었고,그 또한 많은 출장은 아니었지만 출전한 경기의 반을 득점했고 나름대로 살아있는 득점력을 보여줬다. 특히나 AC밀란과의 2차전 팀의 우승향방을 결정짓는 중요한 골을 세우며 다시금 기회에 강한 자신의 득점력을 보여주었다. 특히나 챔피언스리그 레알 마드리드와의 홈경기선 환상적인 골을 넣으며 부진했던 유벤투스의 공격진에 힘을 실어주었다.
웃는 모습이 귀여운 그의 득점행보는 유벤투스에서 앞으로 계속되길 팬들은 고대하고있다. 2005/2006 프리시즌동안 그가 보여주고있는 골들은 그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임에 불과하다.
부상을 딛고 다시 날아줄 그의 폭발적인 득점력을 기대해본다.
-written by 춤추는알레-
춤추는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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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2 건
최고의 피니셔 ㅋㅋ
원샷 원킬의 대가
부상만없으면 최고!
득점왕ㄱㄱㄱㄱㄱ
VR Left